자율주행차가 신호를 위반했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자율주행차가 신호를 위반했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캘리포니아 자율주행차 단속 시작

자율주행차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했다. 그런데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운전자가 없는 차량이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가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량관리국(DMV)은 2026년 4월 28일 새로운 자율주행차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에 따라 경찰은 자율주행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운전자가 아닌 차량 제조사나 운영사에 위반 통지를 보낼 수 있다. 기존 교통법규는 신호위반이나 과속이 발생하면 운전자에게 범칙금과 벌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조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위반에는 이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새 규정에는 긴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기준도 담겼다. 자율주행차 업체는 소방·경찰 등 긴급기관과 양방향으로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체계를 갖춰야 하며, 30초 이내에 응답해야 한다. 사고 현장이나 통제구역에는 전자 지오펜싱을 적용해 자율주행차의 진입을 막고, 이미 진입한 차량은 신속히 구역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영국 런던에서 무인 택시가 경찰 통제선을 넘어 진입한 사례가 보도되면서, 자율주행차의 긴급상황 대응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도 부각됐다.


운전자 과실에서 시스템 책임으로

일반적인 교통사고에서는 운전자가 전방을 제대로 살폈는지, 제한속도와 신호를 지켰는지 등 운전자의 행위를 중심으로 과실을 판단한다. 하지만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이러한 기준만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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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가 보행자나 장애물을 제대로 인식했는지, 소프트웨어가 위험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제조사가 기존 오류를 알고도 개선하지 않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원격 관제나 운영 시스템이 긴급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했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결국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운전자 한 사람의 부주의를 넘어 시스템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가 책임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미국에서는 오토파일럿·FSD 같은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설계 결함과 관련해 제조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판결이 나온 사례도 있다.


국내 자율주행 실증과 법적 공백

국내에서도 자율주행차는 이미 실제 도로에서 실증 운행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 광주광역시에 자율주행차 200대를 투입하는 대규모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7년 레벨4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2030년까지 2차로 이상 모든 도로에 자율주행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레벨3 자율주행차는 일정한 조건에서 시스템이 운전을 맡더라도 필요할 때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사고 책임의 기본 축은 여전히 운전자에게 있으며, 기존 자동차보험에 관련 특약을 더하는 방식으로 보완되고 있다. 다만 정부는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에 대비해 2026년 4월 ‘자율주행차 사고책임 TF’를 구성했으며, 연말까지 사고 유형별 책임 판단 기준과 보험처리 절차를 표준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2020년 개정을 통해 피해자를 먼저 보상한 뒤 최종 책임 주체에 구상할 수 있는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제작사와 자율주행 시스템, 운송플랫폼, 통신 인프라 등 여러 주체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고에서 각각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정비되는 단계다.


사고 시 보험금 청구 주체는 누구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술이 사고를 일으켰는지보다 치료비와 휴업손해 등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당장의 문제다.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최종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가 한 명으로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자에게도 기존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차보험을 통해 피해자에게 먼저 보상하고, 이후 사고 원인이 자율주행 시스템이나 제조사의 결함으로 밝혀지면 보험사가 해당 책임 주체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삼성화재는 2026년 자율주행 실증도시 전용보험을 출시해 운전자 과실이 있는 경우 기존 자동차보험으로 먼저 보상하고, 자율주행 시스템·제조사·플랫폼사의 과실로 확인되면 별도 배상책임보험을 통해 책임 관계를 처리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해킹으로 발생한 피해까지 보상 범위에 포함한 것도 특징이다.

문제는 운전자 과실과 자율주행 시스템의 과실을 구분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차량 소유자와 제조사, 시스템 운영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리 주체가 서로 다를 수 있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최종 책임 주체를 특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자율주행 사고 증거 확보의 핵심

기존 교통사고에서는 블랙박스와 CCTV, 목격자 진술, 진단서 등이 주요 증거로 활용된다.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여기에 시스템의 작동 상태와 판단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까지 확인해야 한다.

사고 당시 차량이 자율주행 모드였는지, 시스템이 운전자에게 개입을 요구한 상태였는지, 위험 상황에서 감속이나 회피 판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이 핵심 자료가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러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근거해 자율주행자동차사고조사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에 저장된 정보를 수집·분석해 사고 원인을 조사한다. 제작자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작동·해제 정보와 운전자 개입 요구 정보 등을 기록장치에 의무적으로 저장해야 하며,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기록을 토대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이러한 기록은 일반적인 블랙박스 영상처럼 피해자가 곧바로 확인하기 어려워, 실제 사고에서는 제조사나 보험사, 수사기관 등을 통한 자료 확보가 중요해질 수 있다.


운전자 없어도 책임은 남는다

자율주행 기술은 사고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까지 사라지게 하는 장치는 아니다. 오히려 운전자의 과실이 명확하지 않은 사고일수록 제조사와 시스템 운영사 등 여러 주체의 책임을 함께 살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캘리포니아의 새 규정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자율주행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신호위반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뿐 아니라 제조사·운영사·보험사 등이 각각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부담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사고 초기의 증거 확보와 책임 주체의 확인이다. 사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사고 직후 어떤 자료를 확보하고, 누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차 사고의 책임 구조는 기술 발전과 함께 관련 제도도 계속 정비되는 분야여서 구체적인 사고 형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사고를 겪었다면 책임 주체를 스스로 단정하기보다 사고 당시의 운행 기록과 보험 관계 등을 토대로 관련 제도에 밝은 전문가의 확인을 받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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